순천대 의대·대학본부 유치, 법적으로 왜 정당한가
※ 이 글은 「전남 국립의대, 왜 순천대에 대학본부와 의대가 와야 하는가 — 데이터로 본 동부권 소외 30년」(1탄)의 후속편입니다. 1탄이 인구·의료 인프라 데이터로 ‘현실’을 짚었다면, 2탄은 법령과 제도의 관점에서 ‘원칙’을 따집니다. 아래 내용은 공개된 언론 보도와 정부·법령 자료에 근거한 사실과, 그에 대한 정책적 견해를 구분해 서술했습니다.
1. 먼저, 사실관계부터 정확히 정리한다
감정이나 지역 정서로 논쟁하면 소모적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확인 가능한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아래는 언론 보도와 정부 발표로 확인되는 객관적 경과입니다.
확인된 사실 ① — 전라남도는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지역입니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국립목포대와 국립순천대의 통합을 전제로 한 ‘전남 통합국립의대’ 설립이 추진돼 왔습니다.
확인된 사실 ② — 2025년 12월 10일 전라남도지사와 두 대학 총장이 대학 통합 및 국립의대·대학병원 신설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습니다.
확인된 사실 ③ — 2026년 1월 순천대 구성원 투표에서 통합 찬성이 50.34%(1,574표), 반대가 49.66%(1,553표)로, 통합 요건이 충족됐습니다. 즉 순천대 구성원은 ‘아슬아슬한 다수’로 통합에 동의했습니다.
확인된 사실 ④ — 2026년 2월 10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2030년 개교를 목표로 전남 통합국립의대에 정원 100명이 배정됐습니다.
확인된 사실 ⑤ — 2026년 7월 6일 통합특별시 측은 목포에 의과대학과 대학 본부를, 순천에 500병상 규모 대학병원을 두는 절충안을 제시했고, 7월 13일 목포대는 이를 수용, 순천대는 거부했습니다.
확인된 사실 ⑥ — 2026년 7월 22일 순천대는 대학본부·의과대학을 순천에 두고 목포에는 임상실습 교육기능과 대학병원을 배치하자는 이른바 ‘역제안’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대해 목포대는 7월 24일 공식 회신에서 “실현 가능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사실상 수용하지 않았고, 7월 27일 장흥에서 열린 재협의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됐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먼저 걷어내야 합니다. 이 논쟁을 두고 흔히 ‘순천이 의대를 뺏어 오려 한다’는 식으로 보도되곤 하지만, 사실관계를 보면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애초 통합은 두 대학이 대등하게 결합해 전남 전체의 의료 공백을 함께 메우자는 취지였고, 순천대 구성원도 그 전제 위에서 통합에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제시된 절충안은 대학본부·의대라는 핵심 자원을 한쪽으로 모으는 구조였습니다. ‘가져오려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분담을 지키자는 것’이 순천대 측 주장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사실관계는 보여 줍니다.
실제로 순천대는 단순히 반대에만 머물지 않고, 뒤에서 보듯(확인된 사실 ⑥) 구체적인 역제안—대학본부·의대는 순천에, 임상실습 교육과 대학병원은 목포에 두자는 안—을 내놓았습니다. 비록 목포대가 이를 수용하지 않아 협상은 다시 교착됐지만, 순천대 역시 ‘대안 없는 몽니’가 아니라 자기 나름의 배치안을 제시하며 협상 테이블에 임했다는 점은 사실관계로 확인됩니다. 결국 남은 것은 두 대학의 상반된 배치안을 두고 무엇이 공익 기준에 더 부합하는가를 가리는 일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정원(100명)과 개교 시점(2030년)은 이미 확정됐습니다. 남은 쟁점은 오직 하나, ‘대학본부와 의과대학 본체를 어디에 둘 것인가’입니다. 병원을 어디에 하나 더 짓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의학교육과 대학 거버넌스의 심장을 어느 도시에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순천대가 대학본부와 의대를 함께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라 법·제도의 정합성 문제로 설명됩니다.
1-2. 민형배 시장의 ‘초광역 통합의료벨트’ 청사진 — 무엇을 담았나
이 논쟁의 배경에는 통합특별시가 제시한 ‘초광역 통합의료벨트’ 구상이 있습니다. 순천대 유치의 당위성을 따지기 전에, 먼저 이 청사진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사실 그대로 정리합니다. 아래는 2026년 7월 통합특별시 인수위원회 발표와 언론 보도로 확인되는 내용입니다.
① 전체 골격 — 동부권과 서부권의 의료 인프라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잇는 ‘지역완결형 공공의료체계’를 만들고, 시장 직속 공공의료혁신추진단을 두어 추진한다는 구상입니다.
② 통합 응급의료망 — 전남·광주 소방과 응급실 59곳의 병상·인력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스마트 응급의료 플랫폼 2.0’, 119 구급망과 응급실 전자의무기록(EMR) 연계, 병원 배정·전원을 조정하는 통합 응급의료 컨트롤센터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줄이겠다는 계획입니다.
③ 서부권(목포) — 의과대학 설치와 대학병원 신축·이전, 목포한국병원·목포의료원 등을 연계한 ‘메디컬타운’과 의료산업 생태계 조성이 핵심입니다.
④ 동부권(순천) — 성가롤로병원 일대를 ‘메디컬 특화지구’로 지정, 권역모자의료센터 신설, 순천의료원을 600병상 규모로 확대해 국립의대와 연계한 수련·교육 거점병원으로 운영한다는 구상입니다.
청사진 자체는 응급·필수의료 접근성을 높이려는 여러 실행과제를 담고 있고, 그 방향성에는 평가할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통합 응급망과 순천의료원 확대, 권역모자의료센터 신설은 동부권 주민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항목입니다.
그러나 이 글이 주목하는 핵심 쟁점은 하나입니다. 청사진의 큰 틀에서 의과대학과 대학본부는 서부권(목포)에 두는 것을 전제로 하고, 동부권(순천)에는 진료·수련 기능을 하는 병원 중심 인프라가 배치된다는 점입니다. 즉 동부권은 ‘병원은 확충되지만 의대 본체는 갖지 못하는’ 구조가 됩니다. 순천 지역사회와 순천대가 “동부권 의대 배제”라며 반발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정리하면, 청사진의 응급망·병원 확충은 그 자체로 유용하되, ‘의사를 길러내는 교육·연구의 심장을 어느 권역에 둘 것인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서 동부권을 후순위에 놓는다는 것이 순천대 측 문제 제기의 본질입니다. 아래 2장부터는 왜 그 심장이 의료공백이 더 큰 동부권(순천)에 놓여야 하는지를 법과 제도로 따집니다.
2. 논점 하나 — 의대와 대학본부·부속병원은 ‘분리’가 어렵다
절충안의 핵심은 ‘의대·본부는 서부(목포), 큰 병원은 동부(순천)’로 나누자는 것입니다. 언뜻 균형처럼 보이지만, 의학교육의 구조를 알면 이 분리가 왜 위험한지 드러납니다.
(1) 의학교육은 ‘대학–부속병원’이 한 몸이어야 한다
의과대학은 강의실만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기초의학(해부·생리·병리)과 임상의학을 잇는 임상실습이 교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이 실습은 대학이 직접 운영·책임지는 부속병원(교육병원)에서 이뤄집니다. 고등교육법령과 의료법 체계상 의과대학은 실습 여건, 즉 충분한 병상과 교육병원을 갖추도록 요구받습니다. 대학 본체와 교육병원이 지리적으로 갈라지면, 교원(교수 겸 임상의) 배치, 실습 순환, 전공의 수련, 연구 인프라가 이원화됩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의학교육 평가인증(ASK 기준)은 교육과정과 실습병원의 유기적 연계, 충분한 임상 증례, 교원 확보를 핵심 지표로 봅니다. 만약 ‘가르치는 대학’과 ‘실습하는 병원’이 도시 단위로 분리돼 운영된다면, 인증 과정에서 교육의 연속성·질 관리가 취약점으로 지적될 소지가 큽니다. 이는 특정 지역을 편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의학교육의 표준적 운영 원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실제로 국내 의과대학들은 대부분 대학 본체와 부속병원(또는 협력병원)이 같은 생활권 안에 자리 잡고, 학생들은 저학년의 기초의학 강의부터 고학년의 병원 임상실습까지 하나의 연속된 동선 안에서 교육받습니다. 교수는 오전 진료와 오후 강의를 오가고, 전공의 수련과 학생 실습이 같은 병원에서 맞물립니다. 이 촘촘한 결합이 의학교육의 질을 떠받치는 뼈대입니다. 대학과 병원을 서로 다른 도시로 갈라 놓는 설계는 이 뼈대를 인위적으로 끊는 것과 같아서, 국내외 어디에서도 표준으로 삼지 않는 방식입니다.
(2) ‘본부·의대는 A, 대형병원은 B’ 구조의 구조적 취약점
절충안대로라면 순천에는 500병상 대학병원이 들어서지만, 의대 본체와 대학 거버넌스는 목포에 남습니다. 이 경우 순천의 병원은 ‘대학이 운영하는 부속병원’이라기보다 ‘멀리 있는 대학에 소속된 원격 병원’에 가까워질 위험이 있습니다. 교수 인력의 정주(定住), 기초–임상 통합 연구, 의대생·전공의의 지역 정착이라는 선순환은, 대학과 병원이 같은 생활권에 있을 때 가장 강하게 작동합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동부권이 원하는 것은 ‘병원 건물’이 아니라 ‘의사를 길러내고 지역에 남게 하는 완결된 의학교육 생태계’입니다. 병원만 떼어 주는 방식으로는 그 생태계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3. 논점 둘 — 정부의 의료취약지·필수의료 법제와의 정합성
어디에 의대를 둘지는 대학 간 나눠먹기가 아니라, ‘국가가 왜 지방에 의대를 늘리는가’라는 정책 목적에 비추어 판단해야 합니다. 정부의 제도 설계를 보면 답의 방향이 보입니다.
(1) 지역의사제와 ‘의료취약지 정주(定住)’ 원칙
정부는 지역·필수의료 격차 해소를 위해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지역의사제 도입을 예고했습니다. 그 핵심은 의료취약지에 장기 정주할 의사를 그 지역 진료권 중심으로 선발·양성하고, 일정 기간(약 10년) 지역의료기관에서 복무하게 하는 것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의무복무 진료권 중심으로 상당 비율을 선발하는 방안이 논의돼 왔습니다.
이 제도의 논리는 명확합니다. ‘의사가 부족한 곳에서 뽑아, 그곳에서 배우고, 그곳에 남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대의 교육·수련 인프라는 의료취약이 더 심한 진료권에 놓이는 것이 제도 취지에 부합합니다. 1탄에서 데이터로 보였듯, 동부권(순천·여수·광양 등)은 70만 명 이상의 생활권을 형성하면서도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이 없어 중증·응급환자가 광주나 수도권으로 원거리 이송되는 구조입니다. 정주형 의사를 길러야 할 ‘현장’이 바로 동부권이라는 뜻입니다.
(2) 필수의료·지역격차 해소 특별법의 방향
최근 「필수의료 강화 지원 및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특별법」 등 지역 의료격차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입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가균형발전의 관점에서도, 국립대학 자원의 배치는 ‘이미 상급의료가 있는 곳’보다 ‘공백이 큰 곳’을 우선하는 것이 균형발전 법제의 취지에 맞습니다.
정리: 정부 제도(지역의사제·필수의료 특별법·균형발전)는 모두 “의료가 부족한 곳에 교육·수련의 뿌리를 내려라”라고 말합니다. 동부권의 의료공백이 더 크다는 사실은 언론 보도로도 확인됩니다. 그렇다면 의대·대학본부를 동부권 거점(순천)에 두는 것이 이들 법·제도의 목적함수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 순천대 유치 주장의 제도적 근거입니다.
(3) 고위험 산업단지와 산업보건의 수요
동부권에는 여수국가산업단지와 광양제철소 등 대규모 고위험 산업시설이 밀집해 있습니다. 화학·철강 산업은 급성중독, 중증 외상, 화상, 직업성 질환 등 필수·중증의료 수요가 상시적으로 높은 지역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감당할 상급 의료체계와 권역 단위 외상·응급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습니다. 의학교육과 대학병원이 이 산업권과 같은 생활권에 자리 잡아야, 산업보건·직업환경의학·응급외상 분야의 임상·연구 역량이 실제 수요와 맞물려 축적됩니다. 이것은 지역 정서가 아니라 보건정책상의 수요–공급 정합성 문제입니다.
3-2. 헌법과 법률 체계에서 본 근거 — ‘건강권’과 ‘균형발전’
이 문제를 더 위로 끌어올리면, 결국 헌법이 보장하는 두 가치와 맞닿습니다. 하나는 국민의 건강권이고, 다른 하나는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입니다.
(1) 헌법 제36조 제3항 — 보건에 관한 국가의 보호 의무
헌법 제36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합니다.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의 생명·건강을 지키기 위한 의료체계를 형성할 적극적 의무를 진다는 근거로 해석됩니다. 특정 지역 주민만 상급의료에 접근하기 어렵고, 중증·응급 상황에서 원거리 이송에 생명을 걸어야 한다면, 이는 보건에 관한 국가 보호가 지역 간에 균등하게 미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의대와 교육병원의 배치는 바로 이 ‘국가의 보호 의무’를 어느 지역에서 더 시급히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2) 헌법 제123조와 국가균형발전 — 지역 간 격차의 시정
헌법 제123조 제2항은 국가가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합니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현행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 체계)의 취지도 같습니다. 자원이 이미 집중된 곳을 더 두텁게 하기보다, 상대적으로 낙후·소외된 지역의 격차를 우선 시정하라는 것입니다. 국립대학의 핵심 자원인 의과대학과 대학본부는 국가 예산으로 세워지는 공공재이므로, 그 배치는 사익이 아니라 이 헌법·법률상 형평의 원리에 따라야 합니다. 1탄이 데이터로 보인 ‘동부권의 상대적 소외’는, 바로 이 균형발전 원리가 작동해야 할 지점을 가리킵니다.
(3) 국립대학의 공공성 — ‘특정 도시의 자산’이 아니다
국립순천대와 국립목포대는 모두 국가가 설립·운영하는 국립대학입니다. 새 의과대학 역시 국민 세금으로 세워집니다. 따라서 “어느 대학이 더 힘이 세냐”가 아니라 “국민 세금이 어디에 놓일 때 공공의료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하느냐”가 판단 기준이어야 합니다. 이 기준을 세우면 논쟁의 성격 자체가 바뀝니다. 지역 간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자원의 최적 배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4. 논점 셋 — 절차적 정당성과 신뢰보호
이 사안은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도 중요합니다. 순천대 구성원은 2026년 1월 통합 투표에서 50.34%라는 근소한 찬성으로 통합에 동의했습니다. 그 찬성은 ‘동부권 거점대학으로서 의대와 대학 본체를 정당하게 분담한다’는 기대를 전제로 한 선택이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통합의 성립 요건 자체가 순천대 구성원의 동의였던 만큼, 통합 이후의 자원 배치는 그 동의의 전제와 크게 어긋나지 않아야 합니다. 행정법의 일반 원칙인 신뢰보호의 원칙—행정청의 선행 언동을 신뢰한 상대방의 정당한 기대는 보호되어야 한다—을 정책 논의에 원용하면, ‘통합에는 동의를 구해 놓고 핵심 자원은 한쪽으로 몰아준다’는 결과는 절차적 신뢰를 훼손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 주장은 특정인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동의를 받아 성사시킨 통합이라면, 그 자원 배분도 동의의 취지에 맞게 균형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절차적 공정성의 문제 제기입니다.
덧붙이자면, 신뢰보호는 순천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통합 전체의 안정성과 직결됩니다. 통합은 두 대학 구성원의 동의라는 취약한 균형 위에 서 있습니다. 한쪽 구성원이 ‘동의의 전제가 무너졌다’고 느끼는 순간, 통합 자체가 다시 흔들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절충안 제시 이후 순천 지역사회와 순천대 측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협상이 교착에 빠진 정황도 언론으로 보도됐습니다. 즉 ‘핵심 자원의 편중 배치’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통합 성사와 사업 추진의 실질적 리스크가 됩니다. 정원 100명과 2030년 개교라는 소중한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원 배분은 양측이 납득할 수 있는 균형점에서 설계되어야 합니다.
4-2. 국립대학 통합과 ‘소재지 결정’의 법적 절차
대학본부와 의대의 소재지는 누군가의 선언만으로 최종 확정되지 않습니다. 국립대학의 통합과 학과(의과대학) 설치, 정원 배정에는 정해진 법적 절차가 있습니다.
국립대학의 조직과 소재는 「고등교육법」과 대통령령인 국립학교 설치 관련 법령에 근거하며, 통합·명칭·소재지 변경은 교육부의 인가와 관련 법령 개정 절차를 거칩니다. 의과대학 정원은 보건복지부의 심의(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확정되고, 교육 개시를 위해서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평가인증이 필수적입니다. 즉 소재지 결정은 ‘정치적 합의 → 대학 내부 의결 → 교육부 인가 → 인증’이라는 다단계 절차를 통과해야 하며, 각 단계마다 교육의 질과 공공성 요건이 심사됩니다.
이 절차적 구조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소재지는 한 번의 협상 카드로 못 박을 사안이 아니라, 교육·의료의 질과 공익성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앞서 본 대로 의대와 교육병원의 분리 배치가 인증·운영상 취약점이 될 수 있다면, 그 방식은 이후 절차에서 오히려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의료공백이 큰 동부권에 교육·수련 기반을 두는 설계는, 지역의사제·필수의료 법제라는 국가 정책의 방향과 정합적이어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가 더 수월합니다.
5. 논점 넷 — 접근성·응급의료 골든타임
필수의료의 본질은 ‘시간’입니다. 심근경색, 뇌졸중, 중증외상은 이송 시간이 생사를 가릅니다. 동부권 환자가 상급의료를 받기 위해 광주까지, 때로는 수도권까지 원거리 이송되는 현재 구조는 골든타임 확보에 근본적 한계가 있습니다.
| 구분 | 동부권 현재 구조 | 동부권에 의대·대학병원이 있을 때 |
|---|---|---|
| 중증·응급 이송 | 광주·수도권으로 원거리 전원 | 생활권 내 최종치료(定着) 가능 |
| 골든타임 | 이송 거리만큼 손실 | 권역 내 확보 |
| 의사 정주 | 수련·정착 기반 부족 | 지역 양성–정주 선순환 |
| 산업재해 대응 | 고위험 산단 대비 취약 | 산업보건·외상 역량 축적 |
※ 위 표는 정책 효과를 개념적으로 비교한 것으로, 구체 수치는 실제 사업계획·타당성 조사에서 확정되어야 합니다.
대학병원 하나만 놓는 것으로는 이 구조가 절반만 해결됩니다. 의사를 길러내는 곳(의대)과 일하는 곳(병원)이 같은 권역에 있어야, 수련의–전문의–교수로 이어지는 인력이 지역에 뿌리내립니다. 접근성 개선의 완성은 ‘교육+진료’를 한 권역에 두는 데서 나옵니다.
6. 그렇다면 합리적 대안은 무엇인가
비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동서 균형을 살리면서 의학교육의 원리를 지키는 대안은 존재합니다. 아래는 공론화가 필요한 선택지들이며, 어느 하나를 단정하기보다 객관적 검토 대상으로 제시합니다.
대안 A — 대학본부·의대는 동부권(순천), 제2병원은 서부권(목포)
의료공백이 더 큰 동부권에 교육·수련의 심장을 두고, 서부권에는 별도의 대학병원(제2병원)을 두어 서부 주민의 의료 접근성도 함께 보장하는 방식입니다. ‘공백이 큰 곳에 뿌리를, 나머지 권역에 가지를’이라는 균형발전 논리에 부합합니다. 이는 실제로 순천대가 2026년 7월 22일 제시한 역제안(대학본부·의대는 순천, 임상실습 교육과 대학병원은 목포)과 사실상 같은 구조로, 이미 협상 테이블에 올라온 현실적 선택지입니다.
대안 B — 2캠퍼스·2병원 체제의 명확한 역할 분담
동·서 양쪽에 캠퍼스와 교육병원을 두되, 인증 요건을 충족하도록 교육과정·교원·실습을 제도적으로 통합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대학 거버넌스(본부)와 의대 본체가 어디에 서느냐는 여전히 핵심이며, 의료공백 지표상 동부권 우선 배치의 근거가 유효합니다.
대안 C — 독립적 타당성 조사에 의한 결정
정치적 협상이 아니라, 인구·의료지표·응급이송 데이터·산업보건 수요·교육 인증 요건을 종합한 제3자 타당성 조사와 공론화 절차로 소재지를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데이터가 근거라면, 동부권의 지표가 그 결정에서 상당한 무게를 가질 것입니다.
어떤 대안이든 공통 전제는 하나입니다. “의대와 그 교육병원은 의료공백이 가장 큰 곳에 뿌리내려야 한다.” 이 원칙에서 출발하면, 동부권 거점대학인 순천대가 대학본부와 의대를 함께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은 지역 욕심이 아니라 정책 정합성의 결론이 됩니다.
6-2. 의대는 ‘의사 100명’ 이상의 문제 — 지역 정주와 경제 효과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의사 양성에 그치지 않습니다. 대학병원은 그 자체로 수천 명 규모의 고용을 만들고, 의료·바이오·산업보건 연구를 끌어들이며, 배후 상권과 정주 인구를 형성하는 지역 성장의 앵커(anchor)입니다.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로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에서, 의대와 대학병원은 청년·전문인력을 붙잡아 두는 몇 안 되는 자석입니다. 의대생과 전공의, 교수와 연구인력, 간호·의료기사·행정인력이 한 도시에 모이면 그곳에 안정적 정주 인구가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국가균형발전 법제가 지방 거점대학을 육성하려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대학병원 하나’와 ‘의대+대학본부+병원의 완결 세트’는 지역에 남기는 파급효과의 크기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동부권이 병원만이 아니라 교육·연구의 심장까지 원하는 것은, 이 완결된 생태계가 지역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논리는 서부권에도 똑같이 소중합니다. 그렇기에 이 글은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서부권에도 대학병원을 두어 그 지역의 의료와 경제를 함께 살리는 설계는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쟁점은 ‘어느 한쪽만 갖느냐’가 아니라, 의료공백이 가장 큰 곳에 교육·수련의 뿌리를 두고, 나머지 권역에는 진료의 가지를 뻗는 균형 설계를 어떻게 완성하느냐입니다.
7. 자주 나오는 반론에 대하여
“서부(목포)도 소외돼 왔다. 왜 동부만 챙기나?”
맞는 지적입니다. 서부권의 의료 여건도 충분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글의 주장은 ‘서부를 배제하라’가 아니라 ‘의대·본부는 공백이 더 큰 권역에, 병원은 양쪽 모두에’라는 것입니다. 대안 A·B가 그 절충입니다. 서부에도 대학병원을 두어 접근성을 보장하는 설계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미 정원과 개교 시점은 정해졌으니 빨리 결론 내야 하지 않나?”
속도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의학교육 인프라는 수십 년을 좌우하는 결정입니다. 잘못된 분리 배치로 인증·운영에 문제가 생기면 그 비용이 훨씬 큽니다. ‘빠른 결론’과 ‘옳은 결론’은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데이터 기반의 신속한 공론화가 답입니다.
“결국 지역 간 밥그릇 싸움 아닌가?”
그렇게 보이기 쉽지만, 이 사안의 본질은 ‘의사를 어디서 길러 어디에 남게 할 것인가’라는 공공의료 설계 문제입니다. 정부의 지역의사제·필수의료 특별법이 겨냥하는 목표와 정확히 같은 질문입니다. 밥그릇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인프라 배치의 문제로 다뤄야 합니다.
“대학병원 500병상이면 충분히 큰 배려 아닌가?”
병상 규모 자체는 분명 의미 있는 자원입니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 대학병원의 힘은 병상 수만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 병원을 운영하고 교원을 배치하며 교육·연구를 통합하는 대학 본체·의대와의 결합에서 나옵니다. 본체와 떨어진 병원은 인력 확보와 연구 역량 축적에서 불리할 수 있습니다. ‘큰 병원 하나’보다 ‘교육–연구–진료가 한 권역에서 순환하는 구조’가 지역의료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한다는 것이, 여러 지방 의료 사례가 보여 준 교훈입니다.
“이미 목포대는 절충안을 수용했는데, 순천대만 고집하는 것 아닌가?”
수용 여부는 각 대학 구성원의 정당한 선택입니다. 목포대의 수용도, 순천대의 이견도 모두 존중받아야 할 의사표시입니다. 다만 ‘한쪽이 먼저 수용했다’는 사실이 곧 ‘그 안이 공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소재지 결정은 다수결이나 선착순이 아니라, 교육의 질·의료공백·법제 정합성이라는 객관적 기준으로 판단할 문제입니다.
8. 맺음 — 정치가 아니라 원칙으로
1탄에서 우리는 데이터로 ‘동부권 30년의 소외’를 확인했습니다. 2탄에서는 법과 제도로 ‘왜 순천대에 대학본부와 의대가 함께 와야 하는가’를 따졌습니다. 요지는 세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첫째, 의대와 교육병원은 분리하기 어려운 한 몸이다.
둘째, 정부의 지역의사제·필수의료 법제는 공백이 큰 곳에 뿌리내리라고 말한다.
셋째, 동부권은 인구·산업·의료지표 모두에서 그 뿌리를 내릴 현장이다.
이 결론은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대학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통합특별시가 제시한 절충안은 하나의 정책 선택지이고, 그에 대한 이견 또한 정당한 공적 토론의 일부입니다. 다만 그 선택이 의학교육의 운영 원리와 정부 의료정책의 목적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냉정하게 검증되어야 합니다.
전남 국립의대는 백 년을 갈 자산입니다. 그 심장을 어디에 둘지는 지역 정치의 흥정이 아니라, 데이터와 법·제도의 원칙으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 원칙 위에서 판단할 때, 동부권 거점 국립순천대학교가 대학본부와 의과대학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한 근거를 갖습니다. 그리고 서부권에도 대학병원을 두어 도민 모두의 접근성을 지키는 상생의 설계는, 대립이 아니라 협력으로 얼마든지 완성할 수 있습니다.
※ 본 글에 인용된 경과(통합 MOU, 구성원 투표 결과, 정원 배정, 절충안 제시 및 대학별 수용·거부 여부)는 공개된 언론 보도에 근거한 것이며, 세부 수치와 진행 상황은 이후 변동될 수 있습니다. 본 글은 공공정책에 관한 의견 표명으로,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허위 사실을 적시할 의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