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순천·광양 세 도시를 하나로 묶는 '전남 동부권 통합 특별도시' 구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논의는 단순한 행정 구역 개편이 아니라, 지방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광양만권의 생존과 성장을 모색하는 전략적 구상이다. 그러나 뉴스와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정보가 파편적이어서 현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글은 통합 논의의 배경과 목적, 현재 진행 상황, 기대 효과, 그리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1. 논의의 배경 : 왜 지금인가
세 도시의 통합 논의는 과거에도 있었으나 이해관계 충돌과 주도권 다툼으로 무산된 바 있다. 오늘날 논의가 재점화된 데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 이미 하나의 생활·경제권이 형성되어 있다.
행정 경계와 무관하게, 순천에 거주하며 광양제철소나 여수국가산단으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상당하다. 광양만을 둘러싼 세 도시는 부품 조달, 물류, 항만 이용 등 경제 시스템 면에서 이미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여수·순천·광양시 행정협의회'는 이 현실을 반영한 협력 구조이지만, 법적 구속력과 독자적 예산 집행 권한이 없어 광역 과제 대응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둘째, 세 도시는 상호 보완적인 역할 분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여수는 국가석유화학단지와 해양관광, 광양은 세계 최대 단일 제철소와 동북아 물류 허브인 광양항, 순천은 생태관광과 전남 동부청사를 중심으로 한 행정·교육·주거 기능을 각각 담당한다. 생산(여수·광양) + 물류(광양) + 주거·행정·생태(순천)라는 자족 도시의 요건이 이미 지역 내에 분산되어 있는 셈으로, 이를 통합할 경우 강력한 시너지가 기대된다.
셋째, 전국적인 메가시티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충청권 등 타 지역이 이미 광역 경제권 구축에 나선 상황에서, 전남 동부권도 몸집을 키우지 않으면 국비 지원과 대형 국책사업 유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
2. 현재 상황 : 확정된 정책이 아니다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동부권 통합 특별도시는 현재 확정된 법적·행정적 사안이 아니다. 지역 정치권, 국회의원, 일부 지자체장, 경제단체 등을 중심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책 구상을 논의하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행정구역 통합은 특별법 제정, 각 시의회 의결, 주민투표 등 복잡하고 장기적인 절차를 요한다. 또한 전라남도는 광주·전남 전체의 초광역 통합을 더 큰 그림으로 구상하고 있어, 동부권의 독립적 분리에 대해서는 재정 문제 등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이다. 향후 '전라남도 내 특별자치시'가 될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독립한 광역급 특별도시가 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과거와 비교해 이번 논의가 주목받는 이유는 절박함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방 소멸이 현실화되고 석유화학·철강 등 주력 산업의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민간 경제계를 중심으로 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3. 기대 효과 : 통합이 가져올 변화
성공적으로 통합된다면 다음과 같은 실질적 변화가 예상된다.
행정 권한 확대.
현재 기초자치단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권한이 특례시 또는 광역급 특별자치시 수준으로 격상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지역 실정에 맞는 신속한 도시계획 수립, 산업단지 인허가, 중앙정부와의 직접 협상을 통한 대규모 국비 확보가 가능해진다.
산업 경쟁력 강화.
탄소 중립 전환 시대에 맞서 철강·석유화학 산업을 수소·이차전지·친환경 소재 등 미래 첨단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제는 한 도시의 예산과 행정력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통합 체제하에서는 광양의 이차전지 소재, 여수의 화학 기술, 광양항의 물류, 순천의 연구·주거 기능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글로벌 기업 유치에 나설 수 있다.
대형 인프라 유치 가능성.
인구 70~80만 규모의 단일 경제권이 형성되면, 그동안 경제성 부족으로 번번이 좌절되었던 KTX 추가 노선, 광역 전철, 상급 종합병원 유치 등의 숙원 사업이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생활 편의성 향상.
광역 교통망 일원화, 통합 환승 체계 도입, 복지 기준 통합 등을 통해 시민들의 일상적 불편이 해소될 수 있다.
4. 주요 과제 : 넘어야 할 산
통합의 효과가 크다고 해서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다음 세 가지 과제가 통합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다.
지역 불균형 우려.
통합 이후 행정 기관과 인프라가 특정 지역에 집중될 경우, 나머지 지역은 베드타운화하거나 상권이 쇠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지역 간 균형 발전 방안을 사전에 명확히 설계해야 한다.
시청 소재지 및 도시 명칭 갈등.
세 도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통합 시청을 어디에 둘 것인지, 새로운 도시 이름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는 통합 논의 전체를 흔들 수 있는 가장 폭발력 있는 갈등 요소다.
행정 서비스 접근성 저하.
관할 면적이 광역화되면 외곽 지역 주민들의 시청 접근성이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 구청 체제 도입 등 촘촘한 행정망 설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전남 동부권 통합 특별도시 구상은 행정 지도에 선을 다시 긋는 작업이 아니라,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 소멸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광양만권이 국가 차원의 경쟁력 있는 경제 거점으로 도약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각 도시가 보유한 강점은 이미 상호 보완적이며, 통합의 논리적 토대는 충분하다.
그러나 선언적 구호에서 실질적 통합으로 나아가려면 지역 주민의 신뢰를 얻는 균형 있는 설계와 작은 것부터 실천해 나가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 논의가 정치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시민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지 지속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